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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주인 여호와께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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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주인 여호와께 기도하라.
삼상1:1-11


희망찬 새해, 새로운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옷을 입고 좋아하고 새 집에 들어가면서 기쁨을 가지듯 새해에는 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새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면 발전할 수 없고 행복과 성장을 할 수 없는 병에 붙잡혀 사는 것입니다. 성장을 못하고 행복할 수 없는 환경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야 해결책이 나옵니다.
과거에 한 성도를 데리고 지금 메트로병원에 갔습니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응급실로 갔습니다. 내 마음에는 매우 급한데 링거 한 병을 주사기에 꽂아 놓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빨리 깨어 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의 생각은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전문가다운 생각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성공으로 가고 실패를 피할 수 있습니다.
2004년에는 사무엘 상 강해를 통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작자 미상이다, 사무엘이다, 아비아달이다 또는 사무엘 선지학교 생도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불확실합니다.
기록 연대는 BC 930년 이후 남북 왕국으로 분열을 암시한 기록으로 보아 솔로몬 사후에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삼상27: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이 책의 특징은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는 지혜를 알게 합니다. 또 변화 뒤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주권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을 통해 실패 속에 성공을 가져 온 엘가나와 한나에게서 지혜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엘가나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때에 살았습니다.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영육의 혼돈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제사장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신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라마다임 소빔’ 이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엘가나는 레위인으로 베냐민 지파 기업에 속한 라마에 살았습니다. 엘가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형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엘가나를 소개함에 있어서 조상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은 역사적인 실제의 인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평안보다는 괴로운 일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기뻐해야 될 때 그는 아내 때문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이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한 남자와 두 여인이 사는데 한 여인은 자녀가 있었습니다. 또 한 여인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자녀가 없는 아내를 더 사랑해서 선물을 주는데도 갑절을 주었습니다. 그 때 자녀 있는 여인이 자녀 없는 여인을 자극했습니다. 또 무시했습니다. ‘자녀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여인이 갈등 속에서 싸움하는 것은 이 환경을 만든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1. 엘가나는 열정적인 신앙을 가졌으나 시대와 타협했습니다.

(삼상1:3-5)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엘가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제사를 드렸는데”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했습니다. 오늘날로 표현하면 주일성수 하고 십일조 하고 예배도 잘 드리는 자요, 직분자로 말하면 설교도 기도도 봉사도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는 말씀을 떠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에 편승했습니다. 그 때에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의 변화를 따라 가다보면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변화와 사회상을 보면 놀랍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여필종부’라 하여 여자는 필히 남편을 따라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변했습니다. 요즘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이혼이란 말이 너무 자연스럽고 한 아내와 한 남편으로는 너무 지루하다는 것을 밝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과거 같으면 말도 안 되는 말이 이해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젠 시대적인 상황이 아닌 진리가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엘가나는 아내를 두는 문제에서 말씀을 범했습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는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결합합니다. 또 결합 한 후의 관계는 비밀이 없고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한 남자에게는 한 아내가 사는 것이 창조의 섭리입니다.
(말2: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라 할찌니라” 했습니다. 궤사는 배반, 변질, 위약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4년에는 가정마다 불행의 씨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뽑아 버립시다. 해결할 수 없다면 해결의 주님께 기도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두 여자, 두 남자가 있지는 않습니까? 시대가 그렇다고 그 시대를 따라 간다면 불행의 씨를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엘가나의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이었습니다.

(삼상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삼상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습니다. 자녀를 가진 브닌나보다 한나를 갑절이나 사랑했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음으로 해서 브닌나에게 시기 받았습니다.
(삼상1: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때로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므로 사람에게 시기 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사랑 받음으로 사람에게 시기 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질투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질투 받아도 하나님 사랑하고 또 사람에게 시가 받아도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을 사랑하면 승리합니다.
두 여인이 아내였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했지만 신앙이 있는 한나를 사랑하는 것이 엘가나의 행복이었습니다.
(삼상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이것은 실패 속에 성공의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갈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지니라”
올 한 해 사랑의 대상, 도움의 대상, 갑절로 사랑하고 받는 위치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3. 한나는 남편과 사회적 풍조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를 통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또 한나는 하나님이 무자하게 했으므로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남편들의 불신앙, 불경기 등으로 당하는 어려움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나에게 배워야 합니다. 믿는 가정이나 안 믿는 가정이나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고통은 살아있는 자의 누림이요, 두려움은 건강한 사람들의 감각입니다. 죽은 사람은 고통이 없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수원의 한 가정의 자녀가 이혼 한 후 친정 집에 왔다가 37세 나이로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우울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생은 돈, 환경, 이성, 명예 등으로 심한 고통이 올 수 있습니다. 한나도 무자함과 브닌나의 자극으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는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성전으로 왔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분명한 기도 제목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사용처까지 분명히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이 괴로울 때 어디로 가십니까? 누구를 상대해서 마음을 열어 놓습니까? 기도하여서 이루어지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을 돌립니까? 구체적인 기도를 하고 응답 후의 사용처까지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한나는 구체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브닌나의 자극은 한나의 기도의 씨가 되고 자녀를 얻겠다는 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어려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04년은 무자한 자가 자녀를 얻고 가난한 자가 부자 되고 병자가 건강한 자가 되고 멸시받는 자가 영광 돌리는 해가 될 것입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큰 권세가 임하는 해, 기도의 응답이 있는 해가 될 것입니다.

권태진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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