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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12-18


사람은 누구나 환한 얼굴을 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환한 얼굴 보다는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고가 많고 서로를 불신하고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는 시대에서는 더더욱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한나의 남편 엘가나에 대해서, 한나가 무자함으로 인하여 브닌나에게 자극을 받아 슬퍼하고 울면서 하나님의 전으로 나가 서원하고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환한 얼굴의 열매를 맺는 한나의 기도와 그녀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한나는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행복의 조건이 있습니다. 여자가 남편을 잘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잘 만났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부한 가정에 자랐다할지라도 남편을 잘못만나면 결혼하는 그날부터 고생의 시작입니다. 인생을 경험한 부모님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많은 총각들을 찾으면서 가장 반듯하게 생긴 신랑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을 잘만나야 여자는 행복합니다.
첫째 한나는 남편을 아주 잘 만났습니다. 자녀를 못 낳는 아내지만 배려하고 사랑 해 주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건강하고 마음씨 착하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해 주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여인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결혼을 잘하는 것입니다.
둘째 물질적으로 가난의 조건이 없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꼽고 있습니다. 집이 유복한가, 먹고 사는 것에 문제가 없는가, 의식주 문제에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한나는 가난한 가정이 아니라 괜찮은 가정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생활고의 염려가 없었습니다.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계가 너무 빈곤하다보면 인생이 초라하게 됩니다. 때로는 사람 노릇하지 못할 때가 있고 움츠려질 때가 있습니다. 어디에 나타날 때도, 어른들을 찾아 뵐 때도 일가친척의 애경사에 갈 때도 돈이 없어 부조를 하지 못하게 되면 마음에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나는 엘가나와 결혼하면서 살기에 급급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문제도 한나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남편 때문에 멍든 가슴을 안고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로 행복의 조건 가운데 몸이 건강한 것입니다. 죽을 병이 들면 어떤 환경이 와도 좋은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옛말에 ‘몸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금을 가지고 있다한들, 한국과 세계에서 제일 부자라고 한들, 지병을 안고 산다면 돈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산다면, 그는 불행한 것입니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산다면, 그의 부와 명예는 그에게 결코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산다는 것은 고역이요, 그러므로 번민하게 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와 엘가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집안에 병치레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혼도 잘하고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어서 한나가 고민하고 울었습니까? 인간은 아름다운 만남, 물질 건강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섞여 사는 존재입니다.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고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앞에 사람 뒷 사람과의 관계, 학생은 반에서 친구들끼리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굉장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인생은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쾌한 날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한나는 신망이 높은 사람으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고 존경 받는 처지이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나처럼 좋은 조건이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삼상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울며, 먹지 아니하며, 슬퍼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얼핏 보면 문제가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호화판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걱정할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 사람을 보면 얼굴에 수색이 가득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고통이 있어서 얼굴이 어둡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아만 장군이 비단 옷으로 몸을 가린다할지라도 그의 몸속에는 문둥병이 있어 살이 썪고 있어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살지만 속에는 곪아 터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탄식의 눈물을 흘리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본문에서는 만족할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자식이 없습니다.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이 있어봐야 귀찮기만하지’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문제에 한이 맺혀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면 모두가 다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는 자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한나는 이것을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많다는 것은 그 당시의 문화로는 굉장한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내들도 자식을 많이 낳기 위해서 자기의 하녀까지 야곱에게 들여보내서 자식을 낳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자녀가 12명이나 된 것입니다. 한나에게는 이런 무사함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2. 한나에게는 남편의 위로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열 아들 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하는 남편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남편이 열 아들 보다 자신에게 낫게 대우해 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태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에는 열 아들 보다 나은 남편 가지고도 메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슬퍼하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남편이 채워 줄 수 없는 자리, 건강이 채워 줄 수 없는 자리, 통장에 돈이 많아도 채워 줄 수 없는 자리,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채워 줄 수 없는 빈 자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인줄 알고 추구 했지만 만족감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채워 줄 수 없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채워 줄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성자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내 공허를 채울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만이 마음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의 조건만 가지고는 채울 수가 없는 것들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설교를 듣지 아니하여도 공허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성경을 보지 않고 설교를 듣지 않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면 굉장히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를 보십시오. 돼지는 쥐엄 열매를 먹고도 만족함이 있었지만 탕자는 그 열매로 인하여 만족감이 없었습니다. 탕자는 돼지와 함께 있었지만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양식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것 다 구비하였다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 모시지 못한 사람은 언제든지 공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허는 세상의 어떠한 좋은 것으로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지옥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국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 은총의 신앙 안에서 은총을 입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한나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지 못하는 것을 통한히 여기었습니다.

3. 한나는 아름다운 기도를 했습니다.

한나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닌나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함으로 인해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는 힘도 들이지 않고 아들을 낳는데 나에게는 왜 아들을 주지 않습니까?”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끔 산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때로는 원망 섞인 기도를 하는 것을 봅니다. 누구 누구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너무 멸시 받고 사니까 나에게 복을 주어서 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대표기도를 하면서 목사를 다스려 달라, 장로들을 회개시켜 달라고 하면서 자기를 보지도 않고 남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브닌나에 대한 질투의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에게 투정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한나는 조금도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한번이라도 내게 은혜를 주신 적이 있습니까? 왜 저에게 아들을 주지 않습니까?” 라고 원망을 할 수 있었는데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우리도 이런 아름다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 중에 한이 서려 있고 은근히 남을 꼬집는 것도 있고 남을 원망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못산다고 해서 잘 사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출세를 못했다고 해서 출세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 얼룩진 기도요, 깨끗하지 못한 기도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가지고 야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당시의 모든 상황에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구할 것을 깨끗하게 구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오래 기도했고 술 취한 듯 기도했고 자신의 심령을 물 쏟듯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간절히 기도했다는 증거입니다. 간절하지 않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의 문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눈을 열고 기도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다음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한나는 분명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중언부언하지 않았습니다. 기도 중에는달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자랑하는 것인지 기도를 들어 보면 내용이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변명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분명하게 기도했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철야를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할려고 그러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천만원짜리 코트를 입고 좋은 자가용을 굴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그 기도의 내용은 분명했는지는 몰라도 목적은 분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욕적인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선교사업하고 구제사업하고 교회에 충성하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기도한다면 기도의 목적이 분명한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목적도 대상도 분명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에게 멸시 받는 것이 싫고 어머니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를 할 수도 있지만 한나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한나의 기도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를 한 다음에 확신이 있을 때 얼굴에 수색이 없게 됩니다. 한나는 기도 하면서 오해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오해를 극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엘리 제사장이 간절히 오랫동안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 술취한 것으로 오해해서 포도주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주의 종에게 오해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무언가를 했는데 공로가 다른 사람에게 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삼상1:15-16)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이 말을 들은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분별력도 없는 제사장, 나를 추한 사람으로 본 제사장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겠냐’ 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말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 빈 복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도 따로 생각 따로 마음 따로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표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의 표정과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의 표정은 아주 다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한나는 엘리의 축복 기도를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 기도를 받은 후에 얼굴에 수색이 가셨습니다. 한숨을 쉬고 눈물이 가득한 여인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들을 낳아 품에 품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돌아간 것이 놀랍습니다. 이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는 될 줄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기도는 된 줄로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큰 일을 하는 것 보다 일을 하기 위해 한 사람 두 사람의 믿음을 키우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절대로 주의 일이나 영혼구원이나 복지는 사람과 상의 했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환경 중심, 세상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을려고 하지않습니다. 영혼의 가치를 물질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틀에 매여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나님 손에 모든 것을 부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아름다운 기도를 합시다. 간절히 기도를 합시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를 합시다. 확신에 찬 기도를 합시다. 한나처럼 이런 기도를 해서 한나처럼 응답 받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은 얼굴에 수색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십시다. 여러분에게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기도 했던 양로원을 만들어 노년에 혼자 된 분들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다 지은 다음에 그 모습을 보고 격려를 하듯 신뢰와 믿음이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일천명이 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넘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깜짝 놀랄 일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한나처럼 기도의 능력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권태진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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