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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조수현목사) 유듀고에는 아직 생명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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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두고에게 아직 생명이 있다 !!
주제 : 성령 불 신앙
본문 : 사도행전 20:7-12
말씀의 깊이 : ★★★★★★


바울이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집회를 하고 있을 때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 앉아서 졸고 있다가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곧바로 쫓아 내려간 바울은 무리에게 아직 이 청년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성경에 기록된 이 사고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예배 시간에 졸지 말라는 단순한 뜻일까?

이 사건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더 깊은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집회를 하고 있을 때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 앉아서 졸고 있다가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곧바로 쫓아 내려간 바울은 무리에게 아직 이 청년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성경에 기록된 이 사고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예배 시간에 졸지 말라는 단순한 뜻일까?


이 사건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더 깊은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사도행전 20:7-12)



우리 나라 옛말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을 어느정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 말씀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라고 하며 또 1장 14절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디모데라는 신앙인 속에는 이렇게 『믿음이 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성령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를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이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가지 이상씩의 성령의 은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내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우리 속에서 어떠한 상태로 내주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우리 속에서 식어가는 조그마한 불씨 상태로 되어져 있을 수도 있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젊은 청년 목회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후서의 편지를 쓸 그 당시 디모데의 마음속은 믿음 과 은사가 그만 식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디모데 속에 있는 그 은사가 식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그 당시 상태를 좀더 더듬어 보십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바울이 왜 이 말을 했습니까? 이미 무언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디모데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까?

그 답이 8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자기의 스승이 하나님의 능력 충만한 바울이었는데 그런 스승이 그만 감옥에 갇혔으니 어찌 보면 제자인 디모데로서는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서 그는 목회자로서 복음 전하는데 더욱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움과 고난 등을 인하여서 디모데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상당히 위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진단하자면 뜨겁던 믿음의 열기가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은사가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식어져 있었습니다. 꺼져가는 불처럼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던 디모데에게 바울은 편지를 써서 디모데에게 다시 힘이 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목적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의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믿음에 불이 활활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의 은사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끄러움도 없어지고 어떠한 고난도 넉넉하게 이겨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고 할 지라도 엔진에 불이 타오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엔진에 불이 붙어 있으면 언덕이라도 짐을 싣고서도 거뜬히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영적인 선물들이 내 속에서 식어져 있고 다 꺼져 가고 있고 소멸되어 가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음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과 열심히 있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도무지 기쁨이 없고 의욕이 없고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나중에는 그만 두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불이 아예 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불이 켜져 있는 것에 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성소에서 불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첫째로 성소 안에는 등대, 촛대 또는 등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소 안을 밝히는 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두번째로 성소 안에는 분향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불을 피워서 항상 향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세번째로 성소 마당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불을 피워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이 세 가지는 성소에서 불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늘 성전 마당 번제단에서는 때마다 번제의 불이 피워 드려지고 그리고 성소 안에서는 등대에 불이 켜져 있고 또한 분향단에는 역시 늘 불이 피워져서 향기가 위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소, 성막, 성전의 정상 상태입니다.


출애굽기 30장 7절에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라고 하면서 아침에 불을 피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0장 8절에 보면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하면서 등불을 저녁에 피운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21절에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늘 이렇게 성전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종종 성소의 불이 꺼졌던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 3절에서는 사사 시대 엘리 제사장때의 암울한 시대를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소의 등불이 거의 꺼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유다 아하스왕때에 등불이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이 다시 신앙 부흥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왕때에 등불이 꺼지고, 분향단의 불이 꺼지고, 번제단의 불이 꺼진 이스라엘 성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9장 6절.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그러나 이런 불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불과 그렇지 않은 불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성전에 사용되는 불은 먼저 제단에 번제물을 드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불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불을 불 화로에 옮겨다가 성소 안의 분향 단에 불을 붙입니다. 또한 그 불로 그 성소 안의 등불을 켭니다.

레위기 16장 12절 이하에 그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막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그러나 이를 어기고 하나님이 붙여 주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했던 모습이 성경 민수기 3장 4절에 나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

다른 불이 성소에 켜질 때는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에도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고, 로마서 1장 27절에서도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고 했고 또 아가서 8장 6절 『…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야고보서 3장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성령의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이라는 것입니다.

쾌락의 불은 가정 파탄까지도 이르게 합니다. 탐욕의 불은 사람까지도 죽입니다. 나라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사치의 불은 국가 경제까지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불이 성전인 신자의 몸 속에서 타오르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불에 대한 구절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은 하늘로서 내려온 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랍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성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면서 성령의 불을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말씀합니다.

요엘서 2장 18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 마음속에도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뜨거운 불,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이 예수 믿는 자들의 성전인 마음속에 붙어 있어야 하고 더욱이 꺼질듯한 상태가 아니라 훨훨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다른 불은 우리의 마음에서 타오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 은사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불이 간검되어야 하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8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미련한 자들의 등불은 기름이 없어서 꺼져 갑니다. 이 등불이 늘 타올라야 하는데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실패였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드디어 이제는 우리가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본문의 사건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밤에 집회 장소에 등불을 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기 성경은 이 당연한 사실을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하면서 구태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왜? 그랬을까요? -- 무언가 숨은 메세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남들은 지금 현재 말씀을 듣느라고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 등불이 환히들 켜져서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많이 켜져 있는 등불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유두고라는 청년은 깜깜했습니다. 등불이 꺼져가는 어둠과 같았습니다.


그 청년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계속 졸다가 그 청년은 3층에서 떨어졌습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사실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다행히도 그 청년의 생명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꺼질락 말락하는 그 청년의 생명을 바울이 다시 소생시킨 것입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의 뜻은 『복된 자』라는 뜻입니다. 유두고는 복된 자입니다. 그에게는 믿음, 은사, 성령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회의 자리에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믿음과 은사가 거의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등불을 많이 켠 그 집회 장소의 상태처럼 심령에 불을 환히 켜고 말씀을 받고 있는데 이 청년은 가물 가물 잠이 든 것입니다.

그에게는 불씨가 있었지만 그 불이 타오르지 못하고 꺼져가는 어두운 모습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러다가는 언제든지 금방 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서 생명이 끊어져 버리는 것과 같이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중에 현재 유두고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자는 없습니까? 누구나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 좋은 성령이 내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상태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달란트를 받고서 그냥 땅속에 마음 깊은 곳에 묻어만 두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종이었지만, 문밖에 던져져서 이를 갈며 슬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꺼져가는 디모데의 속에 있는 은사를 불일듯하기 위해서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에 말씀을 기록해서 디모데에게 보낸다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불은 다시 타오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가물가물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불은 타올라야 합니다. 지금 내 속을 간검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자는 기도와 말씀의 기름을 빨리 그 불에 끼얹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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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아의 밤중 집회." 등불을 켜고 집회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많은 등불을 켜는 것은 당연할 진대 굳이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거기 모인 다른 이들은 전부 밝은 불가운데 마음 속 신앙의 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는데 유독 유두고는 어떠했던가요?

"아직 생명이 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미약하나마 유두고의 심령에 꺼질락 말락하지만 불이 아직은 안꺼지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불을 간검하여 다시 살리면 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간절하게 이러한 유두고들을 위해서 옆에서 기도해 주는 자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서 혹시 피녹하고 지친 영혼들이 있나 살펴보며 바울처럼 그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해주는 거룩한 대열에 동참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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