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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지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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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성지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은 아침햇살을 받아 온통 황금빛으로 빛났다.

시온산성에서 시작된 성벽은 모리아산의 정상에 있는 황금돔 앞을 지나 북쪽 다마스쿠스문으로 이어지면서 빛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황금돔과 베이지색의 성벽에 반사되어 도시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황금빛의 평화로움은 취재진에게 `경이로운 도시"란 인상을 심어줬다.

이른 아침인데도 해발 800m의 감람산은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순례객들로 북적거렸다.미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아프리카인 인도인 등.이스라엘의 관문 벤구리온공항에서 세계 각국의 차를 보았는데 예루살렘은 성지를 찾은 각국의 순례객들로 붐볐다.

유대인들의 경전 탈무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열개 분량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려 주셨는데 그중 아홉이 예루살렘의 몫이 되었다"고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은 세계 3대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로 인류의 고귀한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전세계 17억3천여명의 기독교도와 10억3천5백만여명의 이슬람교도,1천3백40만여명의 유대교도들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영원한 성지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이루샬라임".즉 샬렘의 기초,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이다.예루살렘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19~18세기 한 이집트 문서에 `우르샬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구약성서에는 살렘(예루살렘의 옛이름)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15장18절).

므깃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시간30분.영원한 성지 예루살렘은 해발 760m의 산 위에 있었다.주변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야말로 천연적 요새의 웅장함을 드러냈다.

예루살렘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현재의 예루살렘은 크게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나눌 수 있다.동예루살렘은 예루살렘성과 북쪽,그리고 동쪽의 감람산과 남쪽에 있는 힌놈골짜기 주변으로 주로 아랍인들이 사는 곳이다.1967년 이전에는 요르단의 영토였다.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주로 동예루살렘지역을 지칭했다.

서예루살렘은 성밖 서쪽 전지역으로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다.이 지역은 19세기 후반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옮겨오면서 개발됐다.1948년 독립전쟁때만 해도 서예루살렘만 이스라엘의 영토였으나 6일전쟁때 동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영토로 편입됐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은 여부스족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점령,시온산성에 다윗성을 세웠다.기원전 960년경 솔로몬이 다윗성의 북쪽에 있는 모리아산에 성전을 지었다.이 성전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으며,기원전 538년 이스라엘민족을 포로지에서 이끌고 온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됐다.그후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했으나 70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성전이 세워졌던 모리아산 위에는 지금 이슬람의 황금돔이 세워져 있다.

콘스탄티누스1세가 로마황제가 되면서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예루살렘에 많은 기독교건물이 들어섰다.335년 세워진 예수님무덤교회가 대표적인 건물이다.그후 예루살렘은 회교도에 의해 점령되어 45년간 통치를 받았다.1099년 십자군이 점령,성안네교회를 세우는 등 비잔틴시대의 교회터에 웅장한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20회 이상 무력에 의해 주인이 바뀌었던 예루살렘은 10회나 완전히 파괴됐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기억의 보고,종교적 경외심이며 민족의식의 원천이다.또 기독교도들에게는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고통과 부활의 현장이다.이슬람교도들에게도 마호메트의 신비한 야간 여행의 목적지이자 제3의 성지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시의 지위는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간의 쟁점이 되고 있다.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인류평화의 핵이다.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해 12월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문건을 채택했다.그것에는 예루살렘이 인류의 영원한 성지이며 평화를 위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루살렘=글 이승한·사진 곽경근 shlee@kukminilbo.co.kr



〈오늘의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구도시(동예루살렘)와 신도시가 대조적이다.신도시에는 행정·사법·입법부와 대학,박물관이 있고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차량소통도 빈번하다.그러나 구도시는 높지 않은 건물과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이색적이다.

감람산에는 다윗과 예수그리스도 당시의 운송수단이었던 조랑말과 낙타가 순례객들을 태우기 위해 모여 있다.아랍인들이 돈을 받고 태워주는 낙타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예루살렘 관청이나 공공기관이 일자리를 제공,예루살렘은 은행 금융 보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중공업시설이 없고 주로 다이아몬드 가공과 인쇄·출판,가정용품,기구 의약품,공예품제조 등 경공업이 경제기반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 최고의 학문기관인 히브리대학과 배잘렐예술아카데미,구빈국립음악아카데미,히브리유니온대학이 예루살렘에 있다.하다사메디컬센터는 의학연구 및 의료기술로 유명하다.

이스라엘박물관 록펠러박물관 이슬람박물관은 근동의 고고학·민족학적인 수집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는 텔아비브욥바와 벤구리온공항,북쪽으로 나불르스와 예루살렘국제공항 하이파,동쪽으로 사해 마사다,남쪽으로 헤브론 브엘세바 네게브 등으로 갈 수 있다.인구는 약 60만명이다.
    예루살렘성안은 기독교 이슬람교 가톨릭 유대교 지역 등 4개의 권역으로 나눠진다.전세계에서 찾아온 순례객들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찾는 곳이 다르다.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후 전세계로 흩어진(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을 찾아 성전의 재건을 기원한다.이슬람교도들은 솔로몬 성전터에 세워진 황금돔을 찾는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찾아 감람산 꼭대기 예수승천교회에서부터 주기도문교회_눈물교회_만국교회_베드로 통곡교회_예루살렘성안의 성묘교회_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선고교회_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던 비아돌로로사,마가의 다락방,다윗무덤교회 등을 순례한다.

취재진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시를 조망한 후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와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 부활 승천했던 과정을 기념해 세운 교회를 걸어서 순례했다.이 순례과정에서 취재진은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과정이 그림처럼 살아나는 것 같은 감회를 느꼈다.

갈릴리호수를 중심으로 3년동안 복음을 전한 예수는 대제사장 가야바에 의해 고발당한 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예루살렘성으로 향했다.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을 향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자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 뒤 겟세마네동산에 올라 베드로에게는 새벽닭이 울때까지 세번을 부인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구원을 이루기 위해 공생애를 마감할 시기가 왔음을 알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외로움속에서 겟세마네동산으로 올랐을 것이다.

겟세마네동산의 바위에서 예수는 고뇌하며 눈물로 세번이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예수가 눈물로 기도했던 곳에는 지금 만국교회가 세워져 있다.교회 뜰에는 예수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2천년의 올리브나무 8그루가 있으며 그 앞에는 예수가 고뇌속에서 기도한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나이다.그러나 아버지를 믿습니다”

교회안에는 지금도 예수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바위가 남아 있다.만국교회 위쪽에는 예수님 눈물교회가 있고 그 위에는 주기도문교회,감람산꼭대기에는 예수승천교회가 있다.

승천교회는 서기 390년 로마에서 온 한 귀부인이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라 건립했다.귀부인이 세운 최초의 승천교회는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됐다가 십자군들에 의해 재건됐다.이 교회는 지붕이 없었으나 이슬람의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때 지붕을 만들었다.현재 모습은 살라딘 당시의 것이다.

주기도문 교회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준 장소를 기념해서 세운 교회다.이 교회는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세워졌다.헬레나는 기독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예수님무덤교회,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주기도문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에는 80개국의 언어로 된 주기도문이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마당 지하에는 예수가 제자들과 잠을 자던 토굴,초대교인들의 무덤 등이 남아 있다.

예수님 눈물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의 파괴를 알고 눈물을 흘리신 것을 기념해 비잔틴시대에 세워졌다.지금의 교회는 1955년 새로 지어졌다.교회안에는 비잔틴시대의 교회초석과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예루살렘의 기념교회들은 대부분 오전 8시부터 문을 연다.감람산에 있는 교회들도 마찬가지다.바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순례객들은 교회를 보기 위해 일찍부터 줄을 선다.영국인 순례객 마가렛 세린(26)은 “이스라엘에 오기 위해 1년동안 돈을 모았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밟으니 2천년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내려온 취재진은 기드론골짜기의 다리를 건너 성벽의 동남쪽 밖에 위치한 베드로 통곡교회로 향했다.이곳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를 마친 예수를 가롯유다와 유대교장로들이 잡아온 곳이며 대제사장 가야바에 의해 종교재판을 받은 장소다.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를 아느냐고 묻는데 대해 모른다고 세번 부인했다.

베드로통곡교회는 비잔틴시대에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건립됐다.교회 밖에는 예수가 걸어 올라갔던 당시의 돌계단이 있고 교회지하에는 예수를 가두었던 돌 감옥이 보존돼 있다.돌감옥에는 예수를 고문했던 형틀이 남아있고 벽에는 예수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예루살렘=글 이승한 shlee@kukminilbo.co.kr·사진 곽경근



〈감람산〉

감람산은 해발 830m로 예루살렘성 동쪽 기드론골짜기의 건너편에 있다.이 산을 정점으로 예루살렘 서쪽은 지중해에서 오는 비구름 때문에 비가 많이 오지만 동쪽은 비가 적어 사해까지 이어지는 유대광야가 된다.

맑은 날은 감람산정상에서 사해를 내려다 볼 수 있다.특히 부활절 새벽에 정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요르단의 골란고원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사해를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감람산 북쪽에는 히브리대학의 동쪽 교정이 있는 스코프스산이며 산등성을 타고 남으로 내려오면 독일병원이 있다.해저 250m인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면 멀리서도 감람산과 산 위에 있는 세개의 탑이 보인다.제일 오른쪽에 있는 것이 히브리대학 소속의 건물탑이고 가운데가 독일병원탑,왼쪽이 예수승천교회다.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닿는 곳이 성 밖의 베다니마을이다.이곳은 나사로와 두누이가 살던 곳이다.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감람산으로 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골고다 즉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마태복음 27장 32~33절).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에서 눈물을 흘린다.라틴어로 `비탄의 길" `슬픔의 길"이란 뜻의 비아돌로로사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언덕까지 연결된 1.5㎞정도의 길이다.

유대교를 율법의 종교,이슬람을 코란의 종교라 한다면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따라서 비아돌로로사는 기독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자 기독신앙의 완성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성 안의 주요 성지는 비아돌로로사를 중심으로 예수무덤교회(성묘교회),안나교회,선고교회,채찍교회,베데스다연못,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산정상(현재 황금돔이 있음) 등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성을 찾는 순례객들은 먼저 비아돌로로사를 찾는다.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직접 십자가를 지고 예수가 걸었던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비아돌로로사는 채찍교회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어 무덤교회에서 끝난다.채찍교회는 빌라도의 집무실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예수는 이 곳에서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진 뒤 골고다로 걸어갔다.

비아돌로로사는 모두 14개의 스테이션으로 구분된다.빌라도법정,선고교회,채찍교회,첫번째 넘어진 곳,마리아를 만난 곳,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간 곳,베로니카를 만난 곳,두번째 넘어진 곳,예루살렘여인들을 위로한 곳,세번째 넘어진 곳,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옷을 벗긴 곳,형틀에 못박힌 곳,운명한 곳,아리마데 요셉이 시체를 내린 곳,예수무덤 등이다.

채찍교회에는 예수가 채찍을 맞는 장면,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바라바를 풀어주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빌라도는 예수를 신문하지만 로마법을 어긴 것을 밝혀내지 못하자 예수의 고향 나사렛과 갈릴리지역의 통치자인 헤롯안티파스에게 보낸다.그러나 헤롯안티파스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곳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며 다시 빌라도에게 예수를 보낸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대인들의 요구에 사형을 선고하고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준다.예수는 3번 넘어졌으며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졌다.예수를 따르던 유대인 여인들이 울자 예수는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한다.

비아돌로로사는 너비가 2m밖에 되지 않는다.이 지역은 아랍지역으로 좁은 길을 따라 아랍상인들의 가게가 줄지어 있다.순례객들이 골고다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길목에는 물건을 팔려는 아랍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빌라도법정에서는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골고다언덕까지 십자가 행진이 벌어진다.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른 순례객들은 예수님무덤교회의 웅장함에 놀란다.무덤교회는 335년 헬레나에 의해 건축됐으며 현재 건물은 12세기 십자군시대에 복원된 것이다.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아르메니아정교회 등 구교 6개종파가 이를 관리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기독교가 공인된 후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한다.예수그리스도 당시 채석장이었던 골고다언덕의 한쪽에는 물을 담아 놓은 곳이 있었다.헬레나는 이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했으며 십자가에는 유대인 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예수의 십자가로 판명됐다.여기서 20여m 떨어진 곳에서 예수의 무덤자리가 발견됐다.

종교개혁이후 개신교는 예루살렘성 다메섹문 건너편에 있는 가든툼을 예수의 무덤자리로 조성해 놓고 있다.오스만터키를 몰아낸 영국의 고든장군은 두개골 형상을 한 이곳을 발견하고 다가가 보니 옛 무덤과 거대한 물저장탱크가 있어 기독교성지로 조성했다고 한다.역사성은 없으나 기독인들이 묵상하는 장소다.예수무덤교회는 십자가가 발견된 물탱크,십자가에 못박힌 곳,골고다 언덕꼭대기,예수님의 무덤,아리마데 요셉의 무덤 등으로 구성돼 있다.순례객들은 예수의 시신이 있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보통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린다.

베데스다연못 앞쪽에는 안나교회가 있다.이곳은 마리아의 친정집이 있던 곳으로 지하에는 성모마리아가 태어난 장소가 있다.십자군시대에 지어진 이 교회는 울림이 좋아 순례객들이 찬양하는 곳이기도 하다.베데스다연못은 예수 당시 1백20m 규모였다.예수는 이곳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셨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구약의 시대는 지나고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열렸다.그것은 은혜의 시대,성령의 시대를 의미한다.오늘날 예루살렘은 세계평화의 핵으로 위치하고 있다.예수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이 땅에 평화를 구현했으나 그 평화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예루살렘=글 이승한·사진 곽경근 shlee@kuk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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