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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성경적인 지역교회로 모이는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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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성경적인 지역교회로 모이는게 가능한가?

   
작성자:W. E. 바인(Vine)
   
성경의 최종적인 성격.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사도 바울은 선언한다.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라는란 표현이 성경에 완전하고 최종적인 성격의 인(印)을 친다. 그는 빌립보 교회에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한다(빌 4:9). 그리고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디모데에게 권한다(딤후 3:14). 디모데는 어떤 사람들에게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명해야 했다(딤전 1:3). 그는 많은 증인 앞에서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다"(딤후 2:2). 이것은 사도의 가르침이 한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다른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로 계속해서 전수되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유다는 성경이 "성도에게 단번에(하팍스) 주신 믿음의 도"로 구성된다고 말한다(유 3절). 이 하팍스는 주목할 만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과거에 한번"을 뜻하는 포테와 구분해야 한다. 개정역자들이 흠정역의 "한번"(once) 대신 "영단번"(once for all)을 택한 것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둔 시도이다. 어떻게 "영단번에" 주어진 것이 수정이나 개정이나 보완이 필요하거나 그런 시도를 허용하겠는가?

고린도전서의 영구적인 권면. 지역교회의 행실과 예배와 증거에 대한 고린도전서에 주어진 어떤 가르침들은 고린도 교회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어떤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그 서신은 그 교회에만 주어진게 아니라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고전 1:2). 그 가르침의 많은 부분은 믿음의 기초를 이루는데, 가령 15장 3-5절이 그렇다. 그리고 고린도 지역에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부분도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와 모든 지역교회에 필요한 원리와 교훈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 말한 내용만으로도, 사도의 가르침을 그런 면에서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뿐 아니라 그것들이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의무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할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까닭에, 이 은혜 시대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사도시대 이후로 배도한 기독교계에 만연한 다양한 방법과 대조적으로, 성경적인 방법으로 단순하게 모여왔다.

배도와 미흡한 회복. 교황제가 세력을 얻게된 원인되는 배도의 역사를 기술하거나 개신교 개혁운동(종교개혁)의 불완전한 성격을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 시도이다. 종교개혁은 여러 나라에서 교황제를 무너뜨리는데 큰 영향을 끼치긴 했으나 그 체제에서 해방된 자들을 성경의 진리로 완전히 돌이키는데는 실패했다. 종교개혁으로 파생된 여러 분파 가운데는 여전히 성직주의가 만연했으며, 그와 더불어 세례중생과 같은 잘못된 가르침이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의미심장한 운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전파와 성경이 주는 빛과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지난 세기(19세기) 초반에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의 전통의 족쇄를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원리를 따라 함께 모일 수 있는 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그 운동은 한 지역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한 곳을 중심으로 확산되지도 않았다. 그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에 모였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그 운동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신 결과요, 인간의 전파와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사람들이 진리를 좇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리고 성경이 전세계에 널리 보급된 까닭에 여러 나라에 흩어진 신자의 무리들이 인간적인 감독과 지시없이 사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도록 성경의 인도를 받아왔다.

신약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신약성경은 사도의 가르침 아래 어떤 한 사역자도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를 주관하거나 성례전을 집례하도록 임명받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 일들은 그런 주관자 없이 행해졌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은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우리가 떼는 떡은..."라고 말한다. 영성체대(領聖體臺, 제단 앞의 난간) 같은 구별된 기구도 없고, 사제가 떡과 잔을 나눠주는 것 같은 의식도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장로(감독)를 교회 안에 세워 목양을 하게 하고(행 20:17,28) 그밖에 다른 은사들을 주어 활동하게 했다. 성령의 그런 측면의 사역이 고린도전서 12:4-11에 분명히 언급되었다.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
고린도전서 14장 26-33절의 가르침은 집회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아래 하나님을 찬미하고 모인 무리를 교훈하도록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성직제도는 이와 분명히 배치되며 성령의 인도를 소멸시키는 일을 한다. 교회에 덕을 끼칠 수 있는 많은 은사들이 사장돼 있다. 많은 신자들이 매주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설교만을 듣고 있다. 그들은 몸의 마비된 지체와 같다.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의 순종으로 실제적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기독교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참된 개혁이 될 것이다.

문제의 해답.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이들 가운데 실패와 불완전과 직무유기가 있다고 해서 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아무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잘못이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사람들의 전통을 좇음으로 그런 실패에 대처하려 노력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에 불과하다. 검은색에 검은색을 더하면 도저히 흰색이 될 수 없다. 한가지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추구함으로써 교정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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