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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역할 것인가? (8) 초신자를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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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역할 것인가(8) 초신자들을 대하는 자세

한 가정이 형성되면 아이가 생겨야 하듯이 교회는 초신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더욱 기쁨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으로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가 장성해서 또 다른 자녀를 양육할 때까지 교회는 그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만일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면 자연히 교회는 성장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미 성숙한 성도들이 교회에 더해지는 것으로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환경이 변하면 자연히 그곳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신자들은 그들이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을 하고 교회의 회원이 되어 양육을 받은 교회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헌신할 것이며, 매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굳게 지키려 할 것입니다. 교회가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초신자들을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성숙한 성도들이 초신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 그들은 보호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대부분의 목양자들은 초신자들에 대하여 매우 성급하게 대합니다. 물론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들이 빨리 자라서 교회의 일꾼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성숙하게 되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거듭났다 할지라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이는 초신자라도 성경을 아는 지식이 많으면 그가 교회의 일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아는 것이 많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아이는 가끔 어른들의 눈에 버릇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성경 지식을 조금 안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려 한다면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초신자들에게 목양의 일을 맡기지 말도록 권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딤전3:6). 그렇습니다. 초신자가 비록 많은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는 여전히 보호되어야할 대상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자라야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초신자들 스스로 자라도록 방치해 둔다면 교회는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범위를 벗어나 이곳저곳에서 지식을 더하고 믿음을 더하려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참 된 양식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변에서 무능한 부모를 둔 탓에 자녀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능하더라도 부모로서 자격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무능한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심정으로 초신자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초신자들이 교회의 보호 아래 살아가고 있지 못한다면 그들은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들을 보면서 결혼할 때는 철저하게 부부 중심의 생활을 하더라도 자녀가 생기게 되면 그 가정은 철저히 아이들 중심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역시 처음에 교회가 시작될 때 바른 진리 아래 바른 목회를 생각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교회가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교회에 더해지게 될 때 교회의 관심은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교회의 운영체계를 초신자 중심에 맞추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계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함으로서 믿음의 일꾼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초신자 중심의 운영을 오해해서는 않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 교회를 맞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건전한 교리 안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체질을 초신자들에게 맞추십시오. 그러면 교회는 언제나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될 것이며, 성장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2. 초신자에게 장래 그들이 닥칠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가끔 교회 안에서 초신자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 어려운 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은 당연한 것인자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경험하게 될 어려움들을 미리 말해준다면 이는 오히려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이들은 아프면서 성장을 합니다. 그들이 한 번 아픔을 경험하고 나고 반드시 변해 있습니다. 키가 자라든지, 지혜가 자라든지 어느덧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적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역시 많은 아픔을 경험하면서 자라납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오. 그들은 아이들이 아플 때에 "그래 너는 이 일로 해서 자랄거야"하고 말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를 부둥켜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든 아이가 빨리 치료되기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의 성도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과연 어려움들을 당하고 있는 초신자들을 위로하게 위해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남의 일들을 대하듯 "잘 될거야"하고 관망하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만일 초신자들을 그러한 방법으로 방치해 둔다면 그는 결코 교회의 지체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교회 안에서 자라게 되더라도 그는 다른 초신자들을 그러한 방법으로 대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게 될 것은 분명하지만 초신자들에게 먼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속히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그것은 그들을 더욱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언제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분별 없이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가령 부모보다 친구를 더 의지하고, 또한 선생님이나 연예인, 혹은 운동선수들을 좋아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가정을 뒤로하고 가출을 하여 그릇된 길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의지해야할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목사나 교사, 혹은 성도들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누가 가장 아이의 장래를 분명하게 책임을 져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의 부모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줄 수도 있을 것같이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자녀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것은 부모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말뿐이며, 또한 책임을 질 만한 능력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초신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을 보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사나 성도들을 모델로 삼고 그들의 행위를 신앙의 모델로 삼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지만, 때로는 의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한 이단들이 가장 즐겨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언제나 이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주님의 바른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만일 교회가 진정한 주님의 교회라고 한다면 당연히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구원으로 만족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자매가 상담이 필요하다면서 찾아왔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은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교회는 그녀가 구원을 받는데 온 힘을 기울였지만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스스로 자라도록 방치해 두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지쳐서 구원의 감격조차 잃어버리고 깊은 침체를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가 이제는 한 인격체라고 알아서 살아가도록 만든다면 결국 그 아이는 죽든지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에 의해 키워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이 구원이 취소되느냐 하는 신학적인 문제를 논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가 목양자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면서 결국에는 주님 앞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가 될 것이고, 때로는 목양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거듭난 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그가 구원을 얻는 것에 머무르게 된다면 그는 오랫동안 침체를 겪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지속적으로 젖을 아이의 입에 물리고 키웁니다. 그리고 점차로 단단한 식물을 먹게 하며, 심지어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져야 하는 자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어느정도 신앙이 자란 성도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게 되는 시기는 어린 아이 때가 아니라 소년기와 청소년기, 혹은 사춘기라는 사실을 잘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중요한 시기를 잘 못 방치해 두면 오히려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각종 사고와 반항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결국에는 그들로 인하여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많은 목양자들이 이러한 성도들로 인해서 매우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들의 책임일 수 없습니다. 교회 안의 거듭난 성도로 인한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목양자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돌봐야만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차례에 걸쳐서 받고,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대답 이후에 주셨던 명령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내 양들을 먹이라"(2번 반복)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양들의 상태로 있는 한 그들은 지속적으로 목양자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초신자들을 방치해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지속적으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성도입니다.

5. 비판하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초신자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매우 위험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로 이단 종파들에서 흔히 쓰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기존의 교회들이나 바른 진리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내용을 가지고 초신자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줍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어서 우리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빠져 나오지를 못하는 경우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들은 매우 신중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초신자들에게 비판적인 눈을 갖도록 하는 것은 결국 그가 평생 바른 믿음 위에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느 곳에 완전한 성도들만 모인 곳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수없이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비판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성도들의 작은 실수를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하여 실족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정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교회에 많은 문제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초신자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심어주는 것은 결국 교회에 큰 짐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초신자들이 성도들의 냉냉함이나 게으름에 대하여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들로 하여금 비판하지 못하도록 잘 다스려 권면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생각도 그들이 실망스럽다고 해서 같이 그들에 대하여 좋지 못한 말들을 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성도들에게 대하여 좋지 못한 인상을 갖게 될 것이고, 그는 교회 안에서 그들과 한 몸을 이루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생각을 바꾸도록 도와 주어야만 합니다. 상대방이 비록 허물이 많고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초신자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초신자를 다루는 방법가운데 가장 우선이 되어야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초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계속되는 죄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초신자들에게 대하여 실망을 하는 것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이 죄와의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하여 매우 안도하고 있지만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될 자들입니다.

주변에서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 자들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매우 불안해하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구원을 받았느냐?" "육신을 멸망을 당해도 영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자살해도 구원을 받는 것인가?" "단번 속죄는 우리가 죄를 지어도 구원이 결코 취소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느냐?"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구원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증명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들은 성경의 더 많은 부분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은 자가 죄와 더불어 살아서는 않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목양자들조차도 그들의 구원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신학적인 지식들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이 있다면 그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면 자연히 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목양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그들이 죄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목양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누구나에게 부여된 명령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성도들이 바른 믿음 안에서 본을 보이도록 하는 것은 바로 목양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하여 목양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만일 목양자가 성도들의 건전하지 못한 삶을 보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신지들이 죄에 다시 빠지는 일이 없도록 가르치십시오. 그것은 목양자에게 부여된 특별한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그들을 교회 밖에 있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초신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하여 매우 인색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혹시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실족하거나, 혹은 교회의 일을 그르치게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일을 하지 않은채로 오랫동안 구경꾼으로만 두게 된다면 오히려 나중에는 더욱 일을 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 교회 안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교회를 다녀가는 신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초신자들에게 대하여 일을 시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욱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주님은 그에게 은사가 동시에 주어졌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목양자는 이를 재빨리 파악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 은사에 맞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목양자가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맡김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너무 비중있는 일을 맡겨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초신자치고 매우 유능해 보인다 할지라도 비중 있는 일을 맡기다보면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교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정이나, 운영과 관련하여 일을 맡기다 보면 실수 하나가 교회에는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여전히 마귀의 정죄에 빠질 수 있는 대상임을 기억해야합니다(딤전3:6). 그 까닭에 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주어지게 된다면 교회는 큰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청소하는 일, 예배 안내, 앰프 시설관리, 어린 아이 돌보기 등... 봉사의 일은 하지만 문제가 되더라도 교회가 치명적인 상황을 만나지 않는 일들을 맡긴다면 그것은 초신자들에게 매우 큰 즐거움과 더불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체로서 하나의 몸이 되어가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숙해서 가르칠 수 있는 자들이 될 때까지 지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십시오. 그것은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반드시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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