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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창18:22-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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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창18:22-33절, 480.482.483장.&      하나님은 어느 날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소원을 전했습니다. 하나는 부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요, 다른 하나는 소돔을 멸망시키시겠다는 심판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돔성 소식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아직도 소돔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 비운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는 그야말로 처절한 몸부림이며 끈질긴 집념의 기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기도가 긍휼과 자비만을 이기적으로 바라는 어거지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세 천사들에게서 소돔에 대한 멸망의 예고를 듣고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돔에는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하여 중재 기도를 하나님께 하였습니다.      본문에 있는 그의 기도는 성서에 있는 기도 중에 장엄한 기도입니다. 신앙 생활 즉 하나님을 믿는 이의 생활에 중요한 요소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지 넋두리나 종교적 형식이 아닙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고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마치 세상을 위해 대속 제물을 되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아브라함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이웃을 불쌍히 여긴 이타적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전송을 받은 천사들의 목적지는 소돔성이었습니다. 이 배웅 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18:17절에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시25:14절).그의 선지자나(암3:7절),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요15:14-15절), 하나님은 그의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신 비밀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20절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르짖음"에 해당하는 원어는 "제아카"라고 하는데 법적 술어로 "불공평을 당하는 사람들의 보호받기를 호소하는 부르짖음"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런 예를 들면 가인이 죽인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 호소했고(창4:10절), 말씀을 증거하다가 순교당한 자의 영들이 그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계4:6-10절). 니느웨 성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고(욘1:2절), 애굽에서 선민들의 간역자들로 인한 부르짖음을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이 모든 부르짖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불의한 바를 기억하시고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출3:7절).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기 전에 거기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먼저 진상조사에 나셨습니다.      21절에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소돔과 고모라를 답사하시고 들려오는 부르짖음이 사실임을 판결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돔과 고모라 성 방문의 목적은 형벌을 내리심보다,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여 소돔과 고모라 주민들로 하여금, 죄에서 돌아서기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많은 기도를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기도는 타락한 죄인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이었던 것입니다.     소돔성이 당할 심판을 알고서 소돔성을 불쌍히 여기는 타인의 고통을 진정 자신의 고통으로 삼은, 수준 높은 신앙인의 기도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인 긍휼을 알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공의의 입장에서 소돔성은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그러나 공의보다는 사랑이 심판보다는 긍휼이 하나님의 더 고귀한 속성임을 알고 소돔성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기준으로 제시된 의인 50명을 마침내 10명까지 낮추는 승리의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은 자신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일수록 폭이 타인에게까지 넓어집니다. 때문에 신앙이 성숙할수록 기도 시간도 길어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 기도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그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것임을 우리 성도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삼상12:23절).   2.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기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사30: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시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유보에 대한 위 말씀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의를 시행코자 하심이라고 선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1)예언을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인생들의 유익을 위해서 유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종교적 아편 같은 미신적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언약 성취를 목적으로 인생들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정점으로 성취하셨으니 "곧 이때에…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롬3:36)이라고 했습니다.      (2)자기 백성들에게 공의를 시행코자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라도 그 과오에 합당한 보응을 시행코자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시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롬2:2; 6:12절). 만약 이와 같은 징계가 없이 성도들을 다스린다면 그 구원마저 공의로운 것이 못 된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교만, 무례, 방탕한 자들로 만드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삶의 위기적 정황을 맞아 하나님의 도우심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소외감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지연 자체가 이스라엘 거룩하신 자의 우리를 향한 공의의 시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시9:8절).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의인과 악인을 동등히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있었으며 이 속성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23절)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25절)라고 기도 드렸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성숙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무턱대고 조르는 것과 같이 기도로부터 탈피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기도 드리는 고차원적인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맹목적이며 주술적인 기도가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깊이 통찰하여 보다 강력한 기도를 드립시다.   3.분명한 목적이 있는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    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호소하면서 소돔의 안녕을 구하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의 분명한 목적을 가진 기도는 굉장한 호소력으로 간구 하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때로 밋밋한 이유는 바로 목적이 없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분명한 기도의 목적을 가지고 해야 힘이 있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목적이 있는 기도이었으니 그녀는 기도는 오직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삼상1:10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했습니다. 한나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슬펐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사랑을 완전히 독차지할 수 없는 처지인 데다가 후처인 "브닌나"의 질투의 불꽃이 더욱 튀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남편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또 다시 실로 제단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마친 후에 음식을 먹고 마시고 나서 곧 바로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엎드리자마자 눈물이 먼저 비오듯 쏟아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며 흐느껴졌고 나중에는 방성대곡이 되었습니다. 그의 통곡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내용은 "아들 하나를 달라는 것과, 주시기만 하면 그 아들을 평생에 주님께 드리고,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길러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상황에서는 아들을 낳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한번 낳아 보려는 것이 여인들의 강력한 소망이었습니다. 어느 여인은 말하기를 "임신이라도 한번 해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며 또는 "아기를 낳는 진통은 잠깐이요, 못 낳는 진통은 평생"이라고 합니다.   이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조건을 들어 주시면 이렇게 하여 드리겠다는 서약이므로 한번 서원 했으면 반드시 실천에 옮길 각오가 서야 하며, 그대로 행하여야만 합니다. "한번 서원한 것은 갚기를 더디게 말려 해로울지라도 이행해야 한다"고 성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성서에 약속하신 복을 그대로 보장하여 주십니다. 약속을 불이행하는 처사에는 하나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한나는 다 목적이 있는 기도를 했고 또한 그 결과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하되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 그의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4.끈기가 있는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응답해 주시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끈기있게 간구하며 호소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할 때 우리는 끈기가 없이 대충하고 곧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성실하지 못한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라 끈기있게 기도할 때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32:21-33절에 야곱의 얍복강 나루의 기도는 끈기 있고 결사적인 기도라고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고향에 돌아오는 20년의 고생 끝에 많은 자녀와 큰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으나,     "에서"가 400명의 군인을 이끌고 맞이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두 떼로 가족과 양 떼를 나누고 압복강을 먼저 건너게 한 후 홀로 얍복강에 남아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는데, "형님에서를 만나더라도 서로가 피를 보지 않고 회친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생사의 결단을 하는 야곱의 기도를 보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응답의 표시로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염려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곱이 생명을 건기도 못지 아니한 기도를 드린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놓고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밤에 말없이 홀러가는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앉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과거의 단절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고독한 환경이요, 캄캄하고 적막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자리야말로 야곱이 되는 순간입니다.     신자가 홀로 되는 의로운 장소는 결코 불행하고 괴로운, 우수의 자리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자리에 있을 때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3:1-12절). 또 시내산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의 자기 영광 속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홀로 있을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났습니다.(수5:13-15절). *사무엘이 실로의 성소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주었습니다.(삼상3:4절).*엘리야가 호렙산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었습니다.(왕상19:11-14절). *요나가 고기 뱃속에 홀로 있을 때 회개했습니다.(욘1:1-).     *요한이 밧모섬에 홀로 있을 때 장차 미래의 재난을 보게 되었습니다.(계5-20장). 홀로 있을 때 외롭고, 사람이 그리울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찾아오시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홀로 남아 있을 때"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멀리 떠날 때"입니다.     "세상 일을 하면서도 세상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주를 위해 일하는 때"를 말합니다. 홀로 있을 때는 처자·친구에게서 떠날 때입니다. 홀로 있을 때는 모든 생각에서 떠나고 단순한 인간 이성과 상상과 감정에서 멀리 떠날 때입니다.     이렇게 홀로 있을 때 정직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새로 찾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새로 찾게 됩니다. 이런 경지의 신자는 브니엘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5.다른 사람의 중보의 기도를 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믿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순교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신앙의 길에서 나보다 뒤쳐진 사람들을 위하여 전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교 사역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셔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하여 기도를 않는다면 우리의 이웃은 축복의 가능성조차 갖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실 때 인간을 그 통로로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우리가 마음에 두고 사랑하는 이웃의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위하여 기도를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제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보십니다. 본문의 경우를 보십시오! 사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아브라함이 마지막 간구의 조건으로 내세운 의인 10명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롯과 두 딸도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 롯과 두 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에 담긴 애절한 인간애를 보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때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은 선하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기도가 중요함과 동시에 이웃을 위하여 기도를 아니하면 그 또한 책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불러 주시고,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진리를 바로 알게 하신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일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점을 우리 성도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아브라함의 기도의 의의 입니다. 1)신앙의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섞어 사는데 가장 선한 것이 있는 곳에도 약간의 약한 것이 있고, 악한 것이 있는 곳에도 약간의 선한 것은 있는 법이니,   소돔성에 그래도 의인이 얼마는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중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근거한 신앙의 기도였습니다. 2)겸비한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한 말 중에 "하나님은 주님이시요 자기는 티끌과 재"라고 하였습니다.
 
  티끌과 재가 무슨 존재의 가치가 있겠습니까? 지극히 무용한 물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의 존재를 이렇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말이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기도를 할까 보아서 대단히 두렵고 송구한 마음을 갖고 기도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을 지극히 엄위하신 주님으로 알았고, 자기는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겸손한 자의 말을 잘 들으시려는 것입니다.     눅18장에 세리의 그 겸손한 기도를 주님은 받으셨습니다. 약4: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겸손한 자로서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며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3)자비의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사람들의 멸망의 예고를 들을 때에 마음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롯"은 의리 없이 아브라함을 떠나갔으나 아브라함은 롯을 잊지 않고 위하여 기도하였고, 위급한 환난을 당하게 되자 결사적으로 구명 운동에 나섰었으며, 지금 또 큰 재난을 겪게 되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매달려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여섯 번까지 롯이 사는 성을 구하려고 간구하였으나 그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하였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도고의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 사명을 오늘도 해야 되고 주님은 우리에게 도고를 하시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즉 응답이 있던 없던 그것은 차후에 문제이고 우리가 성심껏 해야 할 일은 기도인 것입니다.     4)담대한 기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의인 50명만 있으면 그 성을 멸하지 마소서 45명만 있어도 멸하지 마옵소서 40명만 있어도, 30명만 있어도, 20명만 있어도,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마옵소서' 그러나 '의인이 한 사람도 없어도 멸망치 말라"고는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기도이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의인 1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구원해 달라"고 중재의 기도하였으며 그 이상은 기도를 중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어떤 자들은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응답해, 주신다고 하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인간들의 욕심만 채우려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되 어느 것이 주님의 의인가를 구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7.아브라함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1)그의 간구한 것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의인 5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지 마소서"에서 시작해서 "의인 10명"까지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구한 기도를 다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인생의 기도를 들으심에 피곤하시거나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이 기도를 그침에 맞추어서 하나님은 떠나 가셨고,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의인 10명도 없는 소돔성은 천벌이 내려 멸망케 될 하나님의 뜻이 정해진 것으로 알게 된 것도 또한 기도의 응답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고집하여 성취시켜 놓는 것이 그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뜻에 내가 복종하며,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그것이 참된 기도 응답입니다.     2)롯과 그의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창19:29절에 "하나님이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가운데서 내어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했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였다"는 말입니다. 롯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배후에 그의 삼촌 아브라함의 기도가 있었기에, 그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억해 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 를 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여서,     즉 내 기도를 생각하여서 이 민족을 환난 중에서 구하시고 이 민족이 복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좌우간 아브라함의 기도의 결과로 롯과 그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능력을 우리들도 이 밤에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기도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 50에서 의인 10까지를 멸망과 구원의 경계 선으로 삼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경계선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히 만나는 선이요,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가 의인의 간절한 기도로 많이 가라앉은 선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신실한 기도를 드릴 때 비록 심판을 없게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의인 50에서 의인 10까지의 은혜는 충만히 임할 것입니다. 실로 어둠 속에서는 촛불 하나가 귀하고, 썩어 가는 생선에는 소금 한 줌이 필요하듯, 이 세상은 아브라함처럼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소돔성과 방불한 현 시대의 신앙인인 우리들은 이 시대의, 사명자가 되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세계 평화와 복음 화를 위하여 대한 민국의 복음 화를 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복음 화되기를 위하여 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내가 속하여 있는 교회가 부흥되고,     여러분의 사업장과 직장과 가정이 번성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며 이 밤에 가지고 나아온 여러분의 기도 제목이 응답 받아서 간증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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