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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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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 패러다임의 전환      (목회와 신학 2002년 4월호)                김인호 목사   1. 목회자를 자살하게 만드는 현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부족한 개인의 목회 소명을 탓해야 할까요? 작은 시련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나무래야 할까요? 누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걸까요? 개인적 한계를 꼬집기 보다 성직자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야만 했던 그 상황을 종합해 보면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려면 지하에서 시작하더라도 수천만원이 듭니다 자기 돈이 없으면 이곳 저곳에서 빌려야 하고 그것도 없으면 은행이든 어디서든 빌려야겠지요. 교회 문을 연다고 어디 성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나요? 3년이 가도 5년이 가도 처자식 2-3명 놓고 예배 드리기 일수구요. 우연히 찾은 새 신자도 썰렁한 분위기 탓에 곧 발을 끊기 일숩니다. 교인이 없으니 월세 독촉은 어찌 넘기고 처자식은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근심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죠. 교회 성장시킨다고 이것 저것 다 해봤지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점차 소명이니 의욕이니 하는 것들조차 거추장스러워지기까지 합니다. 우울증에 빠지는 날이 많아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가 한 도시 지하개척교회 목회자가 자살을 한 겁니다. 처자식을 어디 보낸 뒤 깨끗하게 목욕하고 목을 맨 것입니다. 누가 빚을 내서라도 교회를 개척하라고 했나요? 돈이 있어야 목회를 한다는 생각은 누가 퍼뜨렸나요? 교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에서 기를 쓰고 개척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정상적인 교회개척 현장에 목사 초년생들을 떠밀어내는 교계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목회자가 궁핍한 삶에 못 이겨 소명마저 다 팽개치도록 왜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았나요?  또 왜 이렇게 목사는 많은 건지…  아무 대책 없이 신학생들을 모집하고 아무 대책 없이 목사들을 마구 배출하고 아무 대책없이 사회로 내몰아 알아서 살라고 배짱 튕기는 아무 생각 없는 교단과 신학교 관계자들이 미워집니다..(중략)”   위의 글은 목회에 지친 한 도시 개척교회 목회자의 죽음을 대한 어느 기자가 인터넷에 올려 많은 기독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글이다. 교회 개척에 대한 글을 시작하며 장문의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이 글이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오늘 한국 개척교회가 처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화려했던 과거, 쓸쓸한 현재  20여년 전 한국교회 선교역사가 100여년 되던 즈음 전세계 교회가 한국교회 성장을 주목하던 때가 있었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와 수많은 기도원들, 그리고 열정적인 전도의 열매로서의 부흥의 분위기는 하루에도 6개 이상의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경이적인 교회 성장은 기독교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고 와중에 세계적 규모의 교회들도 여럿 생겨났다. 외국의 많은 신학교 교실과 교회성장 세미나에서 한국교회 성장 이야기는 단골 메뉴였으며 짧은 시일 내에 한 민족이 복음화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1973년 빌리 그램함 전도 집회, 1974년 엑스플로 74에 이어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었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한국교회 성장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아와 서울 하늘을 빛내는 빨간 네온 십자가 군을 경이로운 눈길로 쳐다보았고 우리는 자랑스레 경험들을 나누었었다.   그러나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민주화, 번영화의 물결 속에 교회들은 서서히 침체의 길로 들어선 가운데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 속에서 교회의 이미지는 여러 사건들 속에 과거의 우호적에서 무관심 혹은 냉소적으로 바뀌었는데 이런 척박한 전도토양은 기존교회보다 새로 개척하는 교회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 한국은 9000명이 넘는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세계 제2의 선교사 파송대국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침체의 징후가 나타나기 직전에 일어난 일로, 건강한 선교운동은 건강한 교회를 바탕으로 할 때 온전해 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또 교회 개척이 힘든 현실 속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선교지를 목회의 장으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선교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개 교회들의 정체는 해외선교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한동안 한국교회 전도열과 가열차게 일어나던 선교열정을 경탄의 눈으로 지켜보던 유럽의 선교 지도자들은 우리네 교회가 자신들이 과거에 가졌던 교회 및 선교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던 지적하면서 콜럼비아, 아르헨티나, 싱가폴 등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   3. 교회 개척 그래도 해야 하나? 이미 현존하는 크고 작은 교회들!  그 사이를 비집고 여기저기 상가 아래 위에 들어서 있는 적지 않은 수의 개척 교회들! 한국교회가 추수기였을 때는 이렇게 시작해 자립도 하고 건축도 하는 등 큰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은 목회 토양이 너무도 달라졌다. 불신자를 만나 전도를 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전과 같지 않고 어렵사리 교회를 개척해도 상당수는 일년내에 문을 닫고, 나머지도 어쩌면 영구 미자립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교회 개척에 대한 모색은 어리석어 보이기조차 한다. 그래서인지 매년 신학교를 졸업하는 수천 명 중 교회개척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아니다!  아직 우리 국민의 3/4은 하나님을 모르는 채 살고 있고 우리에겐 지구상에서 가장 미전도 종족인 북한의 형제들이 갖은 고난 가운데 남아있다.  이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는데는 기존 교회들의 힘으론 턱없이 부족한 것은 이미 지난 몇 년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이다. 자연적 교회 성장(NCD)으로 널리 알려진 크리스찬 슈바르츠는 복음전도에 있어서 작은 교회들은 큰 교회보다 16배나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고하였는데, 교회 성장의 핵심적인 8가지 질적 특성 중 7가지는 작은 교회가 소위 많은 수를 자랑하는 큰 교회보다 건강했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보다 나은 부분은 영감있는 예배 뿐이었다. 이 말은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기존의 교회들만의 힘으론 불가능하며 새로운 교회들이 더 개척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하늘 아래 가장 유일하고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 교회 개척이야 말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4. 오늘 한국의 교회개척 패러다임 패러다임(Paradigm)이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일단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 방식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교회는 건물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누구도 교회를 건물이라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놀랍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하면 특정 지역에 있는 종교적인 건물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특별히 주일 오전에 행해지는 의식적인 예배를 생각한다. 한 목회자 모임에서 만남 어느 목사님은 “제가 교회는 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된 교회(건물로서의)를 짓기 위해 죽을 고생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신학교에서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 곧 공동체라고 배운 것 같았는데 내가 건물 목회를 했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런 건물 중심의 교회 패러다임은 무리한 교회 건축들을 하게 했고, 개척자들도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때 자연스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신도시 길목 좋은 곳에 건물 얻기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고, 또 개척성공은 누가 빨리 그 지역에서 교회를 건축하느냐로 판가름 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교회 개척의 병리 현상들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접근하기 좋은 길목과 분위기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의 돈을 필요로 한다. 어렵사리 주일예배를 위한 장소가 준비 된다 해도 큰 교회로 몰리는 철새 교인들 틈 속에서 가족 친지 몇 사람만이 앉아 있는 썰렁한 개척교회는 없는 헌금에 건물 유지비와 개척자 생활비에 더하여 전도비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과제이다. 또 신학교에 대학원까지 다니며 별의 별 생경스런 신학과목을 배웠어도 어디에서도 개척교회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실천적 영혼 구령과 양육무장 사역을 배운 일도 없고 구령의 열매가 검증되지 않은 채 사역지로 내몰리는 것이 오늘의 개척자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5.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건물 중심, 신학교 중심, 예배 중심의 전통적 교회 개척 패러다임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기존 교회 패러다임으로선 더 이상 한국교회에 내일은 없다. 다행히 지난 몇 년 전부터  목회자들 사이에, 교회 건물도 신학교를 나온 사역자도 없었지만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가열차게 성장했던 사도행전의 신약교회로의 의식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교회 개척 패러다임 전환의 단초는 으레 교회 개혁이 일어날 때 그랬듯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문화 혁명 이후 교회 건물도 빼앗기고 목회자는 투옥되고 선교사는 쫓겨나고 신학교는 폐쇄된 가운데 오히려 경이적 교회 성장을 이룬 중국대륙의 가정교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교회 개척의 가능성을  엿보아야 한다.    6.  2. 태아기  성경적 교회 개척 패러다임  6.1 공동체이신 하나님은 교회를 공동체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공동체이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공동체로 존재해 오셨다는 한 증거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상호의존, 상호책임의 공동체 관계 속에 계셨고 오직 갈보리에서 성자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을 때만 이 공동체 관계가 단절되었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신학적 의미 중에는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두 조직, 즉 가정 안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에덴 동산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지음받은 두 인간이 단절되지 않은 공동체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6.2. 이 공동체는 소그룹에서 경험된다. 오늘의 문제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건물과 대그룹 예배 의식 속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교회를 10년, 20년 다니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소원한 관계인 현대 교회의 삶을 통해서는 친밀한 나눔과 세움을 찾아보기 힘이 든다. 근대 셀교회 운동의 아버지인 랄프 네이버는 그의 근작 ‘셀교회 지침서’에서 말하기를 “의사소통의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공동체는 오직 소그룹들을 통해서만 가장 온전한 형태로 형성되기 때문에 소규모 셀 그룹을 15명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소그룹은 대그룹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 관리가 아니라 기독교 기초공동체로 교회 안의 교회로서의 기능이 이루어져야 한다.    6.3. 신약교회는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공동체 교회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12제자 소그룹 가운데 두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와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 육신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으로서 공동체가 소그룹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핍박이 있기 전의 사도행전 교회는 성전에서 대그룹으로 모이고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던 교회(행 2:42)였다. 그리고 이 교회는 제국의 핍박 가운데서 대그룹 모임은 약해졌지만 비밀리에 뻗어나갔는데 그것은 가정에서의 소그룹 형태(고전16:19;골3:16;고전 14:26)로서 였다. 이들에게서 소그룹은  신앙 기초 공동체였고 그 가운데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마18:20; 골1:27)하는 장소였다. 이렇게 시작된 초대교회는 정치적 박해와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격변, 내부적 이단들의 위협 속에서도 4세기 초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로마제국을 넘어 이교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성장해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황제들로부터 정치적 재정적 후원으로 대성당이 생겨나고 교회 안에서 전문적인 성직자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사역자이고 그곳에 지하 동굴이건 가정이건 모이는 곳이 교회이던 초대교회의 삶과 예배와 리더십 형태는 현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사이 교회는 건물 속에 갇힌 형태로 변질되었고 초대교회 역동성의 주역인 가정에서의 소그룹은 요한 웨슬레 시대가 이르기 까지 회복되지 못하였다.   7. 세계교회 현장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소그룹의 회복은 웨슬레 형제의 속회 조직과 훨씬 후대인 20세기에 들어서서 구미에서 일어났던 여러 기독학생 운동을 통해서 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형태의 성령 주도적인 소그룹 교회 운동은 아무래도 중국의 가정교회가 아닌가 싶다. 중국 가정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은 오늘 남미의 토착교회와 아프리카 독립교회 운동과 함께 주목할 만한 3대 교회 성장의 현장이다. 중국은 공산화되기 전 수많은 선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적인 사역자들의 노력에도 100만명 정도의 성도를 가졌었다. 공산화가 진행되고 선교사들이 쫓겨난데 이어 시작된 문화혁명은 더 가혹하게 교회를 핌박해 교회 건물은 폐쇄되고, 목회자들은 감옥에 갇히고,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후 중국이 개방되면서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100배 이상의 성장이었다. 이것은 성령님 주도의 강력한 역사였다는 하나님의 영역이외에도 소그룹 가정 교회가 가진 잠재적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그 외에도 1980년대에 세계 도처에서 처음 나타나고 21세기에 들어 더욱 신학적으로 정립되고 그 역동성이 증명되고 있는 셀 교회 운동은 교회 중심의 민족과 세계복음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1970년대에 오랜 동안 주류를 이루어온 대그룹 의식적 예배의 반작용으로 일어났던 유럽의 가정교회 운동과는 달리 대그룹 주일 예배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소그룹의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있다.   8. 새로운 셀교회 패러다임 8.1. 소그룹으로 시작해야 그러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 개척 방식은 어떤 것인가? 먼저 교회를 개척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영적 오이코스(oikos는 ‘권속’ ‘가족’이라는 헬라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적 오이코스란 자신이 살아오면서 전도하고 양육해서 얻은 영적 자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이 신학교를 나오고 목회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 안에서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할 정도의 몇 제자들이 없다면 교회 개척은 재고하여야 한다. 우리가 전도할 대상은 우리의 주변- 친구, 친지, 이웃에 얼마든지 있는데 교회 개척의 첫 걸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의 영적 오이코스들이 4-5명으로  늘어날 때 이들과 소그룹 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 개척의 두 번째 단계이다. 이 모임은 상호의존, 상호책임의 공동체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의 탄생의 비전을 나누며 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증인으로 양육하는 일이 개척자가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각자의 오이코스 친밀 관계 속에 있는 가족, 친지, 이웃, 동료, 친구들 중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 사람들을 접촉하여 복음을 전하고 가정에서 모이는 기존 소그룹 셀 모임에 초대하여 진정한 신앙 공동체의 단면을 보여줌으로 신앙으로 이끄는 일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 가정에서 모이는 인원이 12명을 넘을 때 개척자는 그동안 훈련해온 리더를 세워 소그룹을 둘로 나누고, 또 다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오이코스 관계의 네트웍 안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다가가 소그룹 셀로 인도하고 하는 사역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그룹이 3-4개로 늘어나게 될 때까지 건물은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소그룹이 모일 수 있는 가정의 조금 넓은 거실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한 달에 한 두번 비공식적인 예배(private worship)을 드림으로 여러 그룹의 연합과 교회 창립의 비전을 다질 수 있다. 이런 비공식적인 예배는 꼭 주일이 아니어도 되며 장소는 가까운 선후배의 교회 공간을 빌리거나 아니면 적합한 공간은 일회적으로 임대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비공식적 예배는 몇 명이 모이든지 십자가가 달린 건물 안에서 매주일 예배 드리는데 익숙한 목회자로서는 이상한 접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빨리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유혹이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주일예배를 일찍 드리기 시작하면 할수록 초기 소그룹과 개척자가 가진 전도적 노력은 둔화된다는 것이 세계적인 소그룹을 통한 교회 개척자들의 한결 같은 보고이다.   마지막으로 소그룹이 5-7개 이상으로 번식하고 비공식적인 예배가 보다 빈번히 드려질 때는 드디어 공식적인 주일예배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이다. 인원이 60-80명이 될 때까지 주일예배를 시작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전술한대로 전도와 양육, 그리고 리더십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고, 다음 이유는 개척 목회자와 핵심그룹의 에너지가 주일예배를 준비하는데 소진되지 않기 위해서 이다.  생각해 보라. 목회자가 주일예배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또 기타 예배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가! 이 수준에 왔을 때 주일 예배를 준비하면 이미 교회는 한 두 사람의 목회자의 생활비와 웬만한 건물을 임대하는데 힘을 나눌 수 있을 만큼의 교인들이 있어서 어엿한 교회로 자리 잡는데 큰 무리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이러는 과정 속에 이 교회는 건물 중심, 교역자 중심, 예배 중심의 교회 생활이 소그룹 중심, 가정 중심, 평신도 중심, 사역중심의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작년 가을 교회 개척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풀러신학교의 밥 로건 교수가 이제까지의 개척예배, 건물 중심의 교회 개척 패러다임 저서(‘Church Planting Tool Kit’)를 과감히 내버리고 소그룹 셀 중심의 교회개척 매뉴얼(‘Cell Church Planter’s Guide’)을 출판하여 작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이것은 향후 세계적 교회 개척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고 하겠다. 이제 한국교회도 이 새로운, 그러나 신약교회가 사용하던 그리도 오래된 패러다임의 물결을 타야 한다. . 오늘 한국교회는 그 전성기를 맞기도 전에 후기 기독교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는 교회에 대해 냉담하며 기성교인들은 대형교회로 몰리는 가운데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한 다수의 이웃과 최후의 미전도 종족인 북한 동포들이 미완성 과업으로 남아있어 새로운 전도 전략과 패러다임으로 무장된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오늘 전세계에서는 신약교회를 열망하는 강력한 성경적 소그룹 중심의 셀 교회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해 11월 홍콩에서 전세계 셀 교회 지도자 연례회의(CCMN)에 참석했던 각 나라 대표들은 한 목소리로 “21세기는 주님의 지상명령이 완수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며 그 전략적 도구는 셀 교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의욕을 표시하였다.  모두가 사역자되고 모두가 선교사되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한국 도처에 무수히 개척됨을 통하여 이 땅에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소망한다.   김인호 목사/ 한국학생선교회(KISA) 대표와 터치 코리아 셀교회개척학교 원장으로 서울 강남에서 셀 교회 원리에 따라 추수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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