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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요 1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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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요 12:24-26)


"엽기 고사성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문 서답-동쪽 문을 닫으니 서쪽이 답답하다. 군계 일학-군대에서는 계급이 일단 학력보다 우선한다. 박학다식-아는 것은 없고 먹는 것만 탐한다. 희노 애락-희한하게 놀다보면 애가 태어난다. 새옹지마-새처럼 옹졸하게 지랄하지 마라.] 최근에 나온 고사성어가 있답니다. "노발대발-노씨가 발끈하니까, 대학이 발끈한다." 우리가 이런 유머의 특징은 예로부터 전래하는 같은 단어를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머처럼 우리가 접하는 성경 말씀이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전달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만약 성경 말씀이 본래 기록된 목적과 의도와는 거리가 먼 의미로 이해될 경우 그것은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접하며 처음의 의미와 동떨어진 해석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살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잇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만 남기고 가신 분이 아니라 당신이 몸소 희생하셨습니다.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완전히 죽어 땅에 묻히셨습니다.
아주 작은 밀알이지만 땅에 심겨져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이 썩으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눈이 밖으로 나와 싹을 틔우고 크게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담겨 있는 밀알이라도 땅에 심기우지 않으면 싹을 낼 수도 없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밀을 땅에 심어 껍질이 썩으면 불과 몇 개월만에 수많은 열매로 번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는 자신의 죽음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사람들에게 누명을 쓰고 힘없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지구상에 참 생명없이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땅에 수 많은 사람들안에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보좌를 포기하고 이 세상에 연약한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사람들의 죄를 홀로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멸망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열매가 맺히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신 한 알의 밀알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기꺼이 남을 섬기기 위해 헌신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땅에 떨어져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우리가 예수안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밀알은 하찮고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음식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수많은 열매를 기대하고 정성껏 땅에 심기운 것입니다. 한 알이 밀이 땅에 떨어져 심기우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한 그루의 밀 이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많은 밀알이 이삭에 주렁 주렁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늘의 보좌에 앉아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를 다스리는 아주 고귀한 분입니다. 죄를 짓고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쫓겨온 분이 아니고 이 땅에 생명없이 죽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심령에 심기워져 영원하고도 풍성한 생명을 확산시키고자 자원하여 오신 분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죄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땅에 떨어진 밀알은 자기의 죽음을 체험합니다. 많은 열매를 위해 자기의 본래 모습은 죽고 썩어 사라집니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희생을 통하여 아주 좋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어느 여름날 한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벌이 날아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머리 위를 왱왱거리며 날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달려드는 벌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습니다. 놀란 표정을 한 자식을 보고 어머니는 다급히 치마로 몸을 감싸고 두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 순간 화가 난 벌은 아이 대신 어머니의 팔을 힘껏 쏘았고, 큰 벌의 독침은 뽑아낼 수도 없을 정도로 깊숙히 박혀 버렸습니다. 벌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어머니의 팔을 기어다녔습니다. 겁에 질린 아이에게 어머니는 고통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제 놀라지 말고 나오렴. 내가 네 대신 쏘였으니 괜찮단다. 이제 이 벌은 나에게 아픔을 주었으니 네게는 아픔을 줄 수가 없단다."

예수님은 그처럼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없애려고 대신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평화와 치유를 위해 대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 대신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값진 예수님의 희생이 없었던들 우리는 아직도 죄사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멸망받을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열매가 많이 확산되는 비결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인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로우신 예수님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 받으시고 죽으시는 그 방법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생명의 열매가 지구상에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맺히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치있는 희생을 늘 고맙게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예수님을 잘 믿고 새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값진 희생이 고귀하게 빛나도록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고귀한 희생을 실천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희생적인 삶을 몸으로 실천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구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생명의 번식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한 것도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한 것도 다 썩어지는 밀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교회를 섬긴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희생위에 사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더하여 주셔서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고 자녀 손들까지 축복해 주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위하여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썩어질 밀알처럼 자기를 희생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하여 그와같은 삶을 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읍시다.

2. 우리가 예수안에서 죽으면 영생하도록 목숨을 보존합니다.(25)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란 집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현대인들은 생명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고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부요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인기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오래 오래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기꺼이 포기하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오래 살려고 집착한 적이 없습니다. 부유하게 살려고 물질에 집착하지도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살려고 안락한 삶에 집착하지도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면 얼마든지 십자가를 면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자기를 포기하셨습니다. 자기 뜻을 포기하셨습니다. 편안함을 포기하셨습니다. 부유함을 포기하셨습니다. 명예를 포기하셨습니다. 심지어 생명까지 포기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부활하시어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이름위에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나님의 본체로써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 까지 포기하셨습니다. 천국보좌를 포기하고 종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완벽한 포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늘의 천사들과 땅에 수 많은 사람들과 땅아래 악한 영들까지도 모두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포기하면 더 좋은 것,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앙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죠지 아틀레이라고 하는 젊은 선교사는 원주민의 창과 몽둥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영국제 윈체스터 연발총의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총을 쏘았다면 자신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젊은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죽인다면 그 마을에서는 영원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죽이는 자가 전하는 예수를 누가 믿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로 인해 그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고. 총을 든 채로 개처럼 끌려 다니며 사지가 찢기며 비참하게 숙어갔던 것입니다. 그가 죽은 후 총알이 열발 이나 들어 있는 총이 발견되었고, 이 사실을 안 원주민들은 늦게나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 것이라는 것에 매여 집착을 포기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버리고 크게 생각하면 많은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육신을 생명을 잃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 땅의 잠시동안 누리는 영화를 포기하고 영원히 빛이 바라지 않는 영광의 주인공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최고의 것을 포기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기꺼이 포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온갖 하늘의 귀한 선물을 주시고자 포기하고 손을 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에 쥔 것을 빼앗길까봐 더욱 꼭 쥐고 포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잃어버리고 미워하면 영생하도록 보존됩니다.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집착하면 잃어버리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은 다시 찾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자기의 야망에 대한 집착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이기심에 근거하여 자기 만족을 위한 집착이라면 오히려 여러분의 인생을 해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꺼이 포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이라도 집착하지 않고 주를 위해서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예수안에서 죽으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26)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주인을 향해 충성스런 노예처럼 우리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며 섬기신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비전을 바라보며 섬기신 것입니다. 즉 서로 섬김을 받으려고 힘겨루기를 하는 세상이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의 자원적인 섬김을 통하여 감동을 받고 서로 서로 행복하게 해 주려고 자원하여 노예가 되어 섬겨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 속에 들어가면 먼저 자신의 몸을 거름으로 내어 주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밀의 눈에서 싹이 나오고 흙을 비집고 나오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몸으로 썩게 하여 거름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과 섬김이 따를 때 생명이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런 섬김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대속물로 다시 말해 희생의 제물로 대신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그런 섬김에 대하여 강조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나와 함께 섬김의 자리에 있자. 섬기는 이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신다. 라고 말입니다.
돼지가 길을 가다 암소를 만나 쌓인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죽어서 사람들에게 살코기와 베이컨을 제공하고 심지어 내 발까지도 맛있는 먹을거리로 그들에게 내주는데 사람들은 왜 나보다 너를 좋아하는 걸까?" 그러자 암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유가 있지. 너는 죽어서야 유익한 것을 제공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우유를 나눠주거든."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큰 축복을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좋은 자리에 있게 된 것도 남보다 더 실력이 좋은 것도 더 많이 섬기라고 하나님이 특별한 은헤를 주신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에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위히 여기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많이 섬김을 받는 이가 더 귀하게 여김을 받지만 하나님은 잘 섬기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맡겨 주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강조한 것이 나를 섬기면 즉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섬길 수 잇습니까? 바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에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에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교회를 섬기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교회의 지체인 교인들, 셀원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사람으로 알고 그들이 성공하도록 특히 예수안에서 성공하도록 기도로, 사랑으로 권면과 가르침으로, 본을 보이고 봉사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지난 주간 어떤 성도를 통하여 귀한 분의 간증을 전해 들었습니다. 과일가게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인근 교회의 교인이 자주 찾아와 전도를 하였습니다. 에수 믿을 마음이 전혀 없는 이분에게 참 귀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와 전도를 하고는 과일을 사가는데 매번 다른 사람과는 반대로 가장 작은 것, 흠집이 있어 팔기 곤란한 것만 골라가지고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손님이 와서 그분이 하던대로 똑같이 작은 것 흠집있는 것으로 골라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당신도 저 교회 교인이에요?"하고 묻게 되었답니다.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다음 주일부터 자기 발로 교회를 찾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섬김의 모습이 아닐까요? 섬김이란 자원하여 내가 손해보고 내가 바보가 되려고 할 때 진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섬김을 지속함으로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과실을 많이 맺으며 살고 있습니까? 믿은지 오래되엇어도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까? 만일 열매가 없다면 어쩌면 여러분이 땅에 떨어져 죽기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죽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를 드려 섬겨야만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음을 경험하는 참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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