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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요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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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장경태목사 [성경본문] 요4:23-24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롬8:4, 빌3:3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오래 전 군에 입대했을 때 훈련소에서 드렸던 예배를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훈련소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힘들었는지, 주일날이 되어서 모두들 쉬고 있을 때, 그때에 내무반에 집합안내가 들립니다. “기독교환자집합” 교회 갈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신자들을 “환자”로 불렀는지 모르지만, 교회 갈 사람 모이라는 소리에 제일먼저 뛰어 나갔고, 그때 교회에 줄을 서서 갈 때 마음이 흥분이 되고,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흘러내렸던 눈물은 예배시간 내내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목사님이 무엇을 설교했는지도 몰랐습니다. 찬송이면 찬송, 성경이면 성경, 헌금시간이 되었을 때, 내 주머니 속에 헌금이 없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러웠는지요, 그렇게 드렸던 예배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예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려본 적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 예배 속에서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예배가 여러분의 일생 속에 얼마나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자는 말이겠지요. 그렇다고 하면 예배의 실패자도 있다는 말인데, 어떤 사람이 예배에 실패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예배에 성공한 사람입니까? 예배에 실패한자는 가인이었습니다. 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벨은 예배의 성공자 였습니다. 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려지면 그 예배 속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만남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예배를 드리고도 마음속에 기쁨도 없고 아무런 감정도 없고 오히려 바쁜 시간만 빼앗겼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예배드린 그 시간이 괴로운 시간 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찾고 계시는 그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배의 장소.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의 내용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오늘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예배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0)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가를 알려면 먼저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었는데, 그럼 왜 사마리아인들은 이런 미움을 받게 된 것일까요? 본래 사마리아인들은 반란자들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주전 922년에 세상을 떠나자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의 10지파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를 “북이스라엘” 이라 부르고 남쪽의 두지파의 나라를 “남유다”라고 불렀는데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앗수르는 대항 세력의 결집을 막기 위해서 사마리아 지역의 거주민들을 국외로 추방시키고 대신 외국의 이방인들을 그 지역에 정착시켰습니다. 따라서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주로 하층민들과 이방인들은 세윌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통혼하게 되어 피가 섞였습니다. 이런 순수하지 못한 혈통이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의 표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미움을 사게 된 원인은 이런 역사적 배경 이외에도 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 온 뒤에 학개와 스가랴의 지휘 하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도 성전건축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유대인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건축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요한 힐가누스의 지도를 받던 유대인들은 주전 128년경에 이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그에 대한 복수로 주후 6년과 9년 사이에 유월절 축제가 진행되던 예루살렘 성전 뜰에 죽은 사람의 뼈를 뿌려서 성전을 모독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후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의 관계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에 오늘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남편이 다섯씩이나 있던 한 여인과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 한모금 만 달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이야기는 발전하여 예배의 이야기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복음의 핵심으로까지 대화를 해 나가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 속에서 예배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조상들은 여기서 즉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이라 한다. 어느 장소가 진짜라는 것이지요.
이질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강한 선민의식이 사마리아인들을 늘 천하게 여기고 경멸을 받아왔던 그 여인은 우리에게도 예배의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유대인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그 대답은 예수님께서는 사실 지금 사마리아의 동네로 일부러 들어가시는 그 모습자체가 해답이기도 합니다. 4절에 보면"사마리아로 통행 하여야 하겟는지라"고 의도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어느 곳이냐!” 는 장소 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하면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예배의 장소는 그곳에서 아버지 즉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 아니냐! 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배자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느냐! 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예배의 대상.
그리고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22절에"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잘못된 예배의 대상을 지적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잘못된 예배의 대상,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맞도록 역사를 고쳤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곳이 그리심산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약속한 땅에 들어왔을 때 모세가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희생을 드린 곳이 신명기 27:4에 의하면 에발산인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리심 산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성경과 역사를 고쳐가면서 그리심산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은 멸시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었습니다. 즉 그들은 예배의 대상보다 장소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온다! 라고 하시면서 예배의 대상을 분명하게 하나님께로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이들을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기까지 한없이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거룩하신 분의 초청을 받아서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사람도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으면 아무도 주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예배를 드리는데, 어디에서 드리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누구에게 드리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의 가장 믿음의 기본은 그분이 반드시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임재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믿어야 할 것은 그분은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엄하게 다스리시고, "이놈"하고 야단만을 치시는 분이 아니고,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상을 주시고, 평강의 상을 주시고, 기쁨의 상을 주시고, 문제의 해결의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드리는 이 예배 위에 기쁨이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3. 예배의 방법.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는 사실 앞에 아멘 했다면 우리의 신앙의 자세, 예배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4) 이제 우리의 예배의 방법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의 예배 속에 신령과 진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신령이란 말은 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도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은 시간도 공간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그림심산이니, 예루살렘이니 하는 장소적 문제를 뛰어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서나 예배당을 짖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시간도 뛰어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에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벽에, 수요일에, 금요일에, 할 수만 있으면 한번이라도 더 예배를 드리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영으로의 예배는 모든 의식을 초월 할 수 있습니다. 꼭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만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때는 꼭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찬송하다가 통성으로 기도하고 바로 말씀을 보기도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드려지는 예배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통해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진리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 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또 한가지 의미는 진심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예배의 처음시간부터 마지막 축도까지 온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의 중간부터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시간 10분전에 다 나와서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드려지는 예배가 정성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예배의 사각지대가 있는데 그곳은 유아실입니다.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 속에 있다보면 어른들도 똑같아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시간에 여러분의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서1장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잘못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잘못된 예배, 건성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하나님은 진절머리가 낫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그 성도들을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시간은 한시간이지만 어떤 성도들은 예배를 두시간씩 드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배시간 한시간 전부터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향하고 있고, 또 그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주님께 옷 입는 것부터, 예물 준비하는 것부터, 몸가짐을 갖는 모든 것에 정성을 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이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주님과 영으로 교제한 시간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깁니다.
오늘 주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이 우리 동경제일교회 에 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통하여 주님께 정성을 다 드린 그 한번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인은 한번 잘못 드려진 예배를 통하여 인류 첫 살인자가 되어지는 불행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늘 주님을 향하여 찬양하고 성전을 그리면서 바른 예배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왕이 되었지만 사울은 제사장을 제쳐놓고 자기가 예배를 집례함으로 실패의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게 되는 비참한 왕으로서의 종말을 맞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는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신앙의 박해속에서 교회당이 불태워지고, 예수믿는 다는 그 사실 때문에 죽음으로 내 몰려지고, 사지가 찍겨지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드리고 싶었던 바로 그 예배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시간에도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눈물 흘리며 지하교회에서 찬송도 제대로 못부르고, 성경도 제대로 못읽으면서도 사망의 고통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 지하교회성도들이 마음껏 드리고 싶은 바로 그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속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은총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이 좌우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의 인생전체가 바뀌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시고 우리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찾아서 복 주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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